
이미지 출처: 알라딘
진료실에서 경전 쪽으로 걸어간 정신과 의사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의 저자 토니 페르난도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실제 진료 현장을 이끌어 온 정신과 의사입니다. 불교를 연구하는 종교학자도, 수행 이력을 앞세우는 출가자도 아닌 임상의라는 사실이 이 책의 성격을 거의 결정합니다. 매일같이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자리에서, 저자는 왜 인간의 마음이 이토록 쉽게 괴로워지는가라는 질문을 붙들었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2,600년 전의 가르침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 고백이나 포교의 언어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이력이 곧 이 책의 시선이고, 그 시선은 임상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의 고통을 다루는 현대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고대의 텍스트를 열었을 때 무엇이 보이는가 — 이 책이 서 있는 자리는 정확히 거기입니다. 국내에는 윌마에서 강정선의 번역으로 2026년 2월 20일 출간되었고, 정가는 18,900원입니다.
“인류 최초의 심리학자”라는 도발적인 한 문장
책이 내세우는 핵심 명제는 선명합니다. 부처는 인간의 마음을 해부한 인류 최초의 심리학자였다는 것. 짧지만 꽤 도발적인 문장인데, 종교의 창시자를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원인을 추적한 탐구자로 다시 세우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면 경전의 문장들은 믿음의 대상에서 관찰 기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부처가 고통을 다룬 방식입니다. 괴로움을 없애야 할 죄나 벌로 두지 않고,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고 어떤 경로로 커지는지를 단계적으로 뜯어본 태도. 저자는 불안과 고통의 근원을 탐구하면서 마음의 작동 원리를 꿰뚫어 본 이 오래된 관찰이 오늘의 임상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부처는 인간의 마음을 해부한 인류 최초의 심리학자였다.
이런 접근의 장점은 독자를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종교 자체에 거리를 두는 사람이어도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누구나 이해관계가 있으니까요.
열다섯 번의 수업이라는 형식
부제가 알려주듯 이 책은 열다섯 개의 수업으로 구성됩니다. 통사적으로 불교 교리를 훑거나 한 권의 경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제를 나누어 하나씩 다루는 구조입니다. 이런 형식은 독자에게 두 가지를 허락합니다. 하나는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자신에게 절실한 대목부터 펼쳐도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한 번에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수업’이라는 단어에도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깨달음처럼 한 번에 도달하는 사건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으로 불교를 옮겨놓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교리를 아는 데서 끝내지 않고 실제 생활에 적용해 본 뒤의 보고서에 가까운 제목이니까요.
‘가벼워진다’는 말의 방향
부제의 ‘인생이 가벼워지는’이라는 표현은 오해를 부르기 쉽습니다. 흔한 힐링서의 위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정신과 의사가 쓴 책에서 가벼워짐은 고통을 못 본 척하는 일이 아니라 고통의 구조를 이해해 불필요하게 덧붙인 무게를 덜어내는 쪽에 가깝습니다. 불안의 근원을 들여다보자는 저자의 문제의식 자체가 회피와는 반대 방향입니다.
이 지점이 이 책을 자기계발서와 갈라놓습니다. 빠른 해결책이나 즉효 처방을 기대하고 펼치면 다소 담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신 왜 내 마음이 이렇게 반응하는지를 조금 더 정확히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어떤 독자의 책장에 어울릴까
불교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미뤄둔 사람, 명상 앱은 써봤어도 그 배경에 깔린 사유는 모른 채였던 사람에게 좋은 입구가 될 만합니다. 종교적 언어에 거부감이 있는 독자에게도 문턱이 낮은 편입니다. 저자가 임상의의 어휘로 설명하는 만큼 신앙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경전 원문에 대한 정밀한 주석이나 학술적 교리 해설을 원한다면 결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텍스트의 엄밀한 재구성보다 오늘의 마음에 닿는 번역이니까요. 불안과 소진이 일상어가 된 시대에, 2,600년 전의 관찰이 지금도 쓸모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펼쳐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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