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알라딘
선택하지 않는 사람을 지켜본다는 것
어떤 소설은 주인공이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할수록 읽기가 쉬워진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장애물과 부딪히고, 마침내 그것을 손에 넣거나 잃는 이야기 말이다. 독자는 인물의 욕망에 자신의 욕망을 포개며 다음 장을 넘긴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인물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또렷한 감각을 끝내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그저 통과하는 사람. 2025년 부커상을 받은 데이비드 솔로이의 「살」은 바로 그런 인간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소설이다.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으로 독자를 붙드는 대신, 이 작품은 "결정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다소 불편한 상태 그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상황이 밀어내는 방향으로 조금씩 떠밀려 가는 사람. 결정을 미루는 일에도 나름의 관성이 붙는다. 오늘 미룬 선택은 내일의 선택지를 조금씩 좁히고, 그렇게 좁아진 자리에서 인물은 또 한 번 결정을 미룬다. 욕망과 사랑, 계급과 성공 사이를 부유하듯 떠도는 그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얼마나 자주 "왜"를 묻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듯 살아가는지를 되비추는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목표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한 사람의 삶을 조용히 흔들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서두르지 않고 보여준다.
2025년 부커상이 주목한 냉혹한 해부도
「살」은 2025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국내에는 서해문집을 통해 2026년 6월 소개되었고, 번역은 송예슬이 맡았다. 정가는 1만 8천 800원. 저자 데이비드 솔로이는 인간의 내면을 건조하면서도 정밀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이 작품에서도 감정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특유의 시선을 유지한다. 슬픔을 슬픔이라 소리 높여 말하지 않고, 인물이 처한 상황을 담담하게 늘어놓은 뒤 그 사이의 빈틈을 독자가 스스로 메우게 하는 방식이다.
출판사가 전하는 소개는 이 소설을 "안티-히어로를 향한 냉혹한 해부도"라고 표현한다. 해부도라는 단어가 특히 인상적이다. 인물을 미워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살아 있는 대상을 얇게 저며 단면을 들여다보듯 관찰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부는 애정도 증오도 앞세우지 않는 작업이다. 대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층이 어떤 층 위에 놓여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에게 마냥 공감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못한 채, 그가 지나온 자리를 따라 조용히 시선을 옮기게 된다. 이 어정쩡한 거리감이야말로 이 소설이 의도한 자리처럼 느껴진다.
욕망과 계급 사이, 부유하는 한 사람
이 소설의 긴장은 큰 사건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욕망과 사랑이라는 사적인 영역과, 계급과 성공이라는 사회적인 영역이 한 인물 안에서 어긋나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균열에서 비롯된다. 주인공은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가 욕망에 이끌리고, 성공에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자신이 왜 그것을 원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사랑과 욕망은 이 인물 안에서 자주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고, 계급과 성공은 그가 스스로 원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자리를 정해 둔 것처럼 보인다.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에도 기쁨보다 어리둥절함이 앞서고, 한 계단을 오른 뒤에도 자신이 왜 그 계단 위에 서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제목인 "살"은 이 균열을 압축하는 상징처럼 읽힌다. 살은 육체이자 욕망이 머무는 자리이며, 동시에 계급과 성공이 새겨지고 소비되는 표면이기도 하다. 정신이 방향을 잃은 자리에서도, 몸은 여전히 무언가를 원하고 반응하며 움직인다. 마음이 "왜"를 답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살은 배고픔과 욕망과 피로에 정직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살이라는 제목은 노골적이면서도 정확하다. 그것은 인물이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가장 낮고 정직한 층위의 이름이다. 이 소설이 인간을 "해부"한다고 할 때, 그 메스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바로 이 살의 층위다.
그래서 「살」은 도덕적인 교훈을 서둘러 내놓지 않는다. 이 인물이 옳은지 그른지를 대신 판단해 주는 대신, 판단을 잠시 유보한 채 한 사람의 표면과 이면을 나란히 펼쳐 보인다. 독자에게 결론을 건네주는 대신 판단의 재료만을 조용히 늘어놓는 셈이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적지 않다.
공감보다 관찰이 앞서는 독서
이 책은 빠른 전개나 명확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시원한 결말이나 또렷한 해답을 쥐여주는 대신, 인물의 곁에 머물며 그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물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갈까"를 곱씹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래 남을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성공이나 사랑 같은 삶의 큰 항목들을 향해 달려오면서도 정작 그 이유를 또렷이 말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의 질문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은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표지이기도 하다. 다만 그 무게에 기대기보다, "무엇을 해야 하고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인간"이라는 이 소설 고유의 질문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걸린다면 그것만으로 펼쳐 볼 이유는 충분하다. 답을 쥐여주는 책이 아니라, 답을 미뤄 둔 채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가만히 비춰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내미는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곱씹게 된다. 읽고 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그 여운이야말로, 이 소설이 남기는 가장 정직한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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