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알라딘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소원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
부모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오래 전해 내려오는 말이 하나 있다. '내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다 가고 싶다'는 바람이다. 처음 들으면 지나치게 어둡고 비관적인 소망처럼 느껴진다. 자식이 부모보다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세상 모든 부모의 당연한 마음일 텐데, 어째서 이들은 '하루 더'라는 짧디짧은 시간에 그토록 매달리는 걸까. 그 짧은 한마디에 담긴 절박함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이 문장의 무게를 알고 나면 같은 말이 완전히 다르게 읽힌다. 스스로를 온전히 돌볼 수 없는 자녀에게 부모의 부재는 곧 삶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지는 일이다. 끼니를 챙기고 몸을 씻고 하루를 이어가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이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루 더'는 욕심이 아니라, 내가 눈감는 순간까지 아이 곁을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다짐에 가깝다. 「안녕, 피터팬」은 바로 그 절박한 바람을 현실에서 마주한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당사자인 저자 전경철이 직접 풀어낸 기록이다.
방송이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시간
2026년 3월, MBC 〈실화탐사대〉에 한 아버지가 등장했다. 간암 말기 판정과 함께 기대여명 6개월을 통보받은 64세의 남성이었다. 보통이라면 남은 시간을 정리하며 죽음을 준비할 시기지만, 그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홀로 키워온 스물일곱 살 아들, 중증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그 아이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라지면 아이의 하루를 대신 붙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를 병상에서조차 놓아주지 않았다.
방송에서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화면 너머의 수많은 사람을 울렸고, 소개 글의 표현대로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저는 죽어도 됩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살아야 합니다.”
짧은 방송 한 편이 담을 수 있는 것은 이 절규의 순간까지다. 아들을 홀로 키워온 긴 세월, 시한부 선고를 받아든 날의 심경, 그리고 그 이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시간까지는 미처 다 담기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화면 밖의 시간을 아버지 자신의 목소리로 채운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경험은 방송을 다시 보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한 문장으로 요약됐던 사연 뒤에 놓인 구체적인 나날들이, 몇 초짜리 자막이 아니라 한 사람이 통과해 온 삶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피터팬'이라는 제목에 담긴 마음
제목의 '피터팬'은 자연스레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몸은 스물일곱 살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여전히 곁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아들. 아버지에게 그 아이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손을 놓을 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밝고 명랑한 동화 속 이름이 이 책에서는 오히려 애틋함과 근심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이름이 놓인 자리에 따라 이렇게까지 다르게 읽힌다.
'안녕'이라는 인사가 반가운 만남의 말이 아니라 떠나는 이의 작별처럼 읽히는 것도 그래서다. 제목 한 줄에 이미 이 책이 품은 정서가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부제가 '마지막 소원'이라고 못박듯, 아버지의 시선은 자기 연민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억울해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물음으로 향한다.
혼자 짊어져 온 돌봄, 그리고 남겨질 내일
이 지점에서 책은 한 가족의 사연을 넘어선다. 중증 발달장애인의 돌봄은 오랜 시간 가족, 그중에서도 특정한 한 사람이 거의 홀로 감당해 온 영역이었다. 하루 종일 곁을 지키고, 돌발 상황에 대비하며, 자신의 삶을 뒤로 미뤄 온 시간이 그 한 사람에게 켜켜이 쌓여 있다. 아버지가 병상에서까지 끝내 놓지 못한 걱정은, 사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개인에게 미뤄 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주 양육자가 사라진 뒤 남겨진 장애인은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특히 눈여겨볼 지점은 저자가 취하는 태도다. 그는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보다, 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향해 담담하게 부탁을 건네는 쪽을 택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글이라기엔 놀랍도록 아들의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시선의 방향이 오히려 읽는 이의 마음을 더 오래 붙든다. 자신의 고통을 전시하기보다 남겨질 사람의 안위를 먼저 헤아리는 그 태도 덕분에, 이 책은 눈물을 짜내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남겨질 사람을 위한 준비의 기록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기에
이 책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나 사회복지·돌봄 현장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먼저 가닿겠지만, 그 울림은 훨씬 넓게 퍼진다. 부모와 자식, 돌봄과 이별이라는 주제는 누구도 완전히 비껴갈 수 없는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나와 무관해 보이는 남의 사정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2026년 6월 이야기장수에서 펴낸 이 책의 정가는 2만 2천 원이다. 방송 한 편으로 스쳐 지나갔을 사연을 한 권의 기록으로 천천히 따라 읽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삶의 마지막과 돌봄의 의미를 진지하게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화려한 서사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이 생의 끝자락에서 끝내 지키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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